고대민동 소개

민주열사 및 민주활동가

  • 민주열사김두황
    경제학과 80
    • 1960년 6월 23일 출생
    • 1980년 고려재학교 경제학과 입학 / 1학년 과대표, 현대철학회 서클활동, 경제학과 학회 총무활동
    • 1983년 3월 8일 성북서에 연행 한선모, 양창욱과 함께 일명 3.7사건으로 조사 받음
    • 1983년 3월 18일 특수 학적 변동자로 분류 하루 만에 강제징집
    • 1983년 5월 양창욱과 함께 연대본부 보안사 사무실에서 조사 받음 / 22사단 55연대 행정병으로 발령 / 연대장 반대로 박격포 탄약병으로 자대배치 받음
    • 1983년 6월 18일 매복 근무 중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 / 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
    • 1984년 고려대 민주광장에 강제징집희생자 추모비 건립 / 김두황 열사와 강제징집 이후 의문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함
    • 2002년 제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타살정황 밝힘. 그러나 진실규명 불능
    • 2004년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타살정황 밝힘. 그러나 진실규명 불능

    김두황 동지는 3남 3녀중 3남으로 태어나 80년 고대 정경계열에 입학하였다. 3학년 말, 학내활동을 반성,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뜻을 같이 하던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축제 및 학도호국단 선거, 4.19행사 등에 관해 토론하고 방향과 대안을 계획하던 중 83년 3월 8일 성북경찰서에 연행되었다. 18일 강제징집 되어 보충대에 입대하였다. 그 후 83년 6월 18일 보안사의 녹화사업으로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군당국은 내성적 성격으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소외감 내지는 열등감으로 인한 복무염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동기를 발표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사건 당일, 오후 6~8시경 단발음의 총성이 소속대 인근에서 먼저 발생하였고, 보고지연 지시와 초동 현장출동이 이루어진 후 헌병대 수사기록상의 현장에서 연발음의 총성이 발생한 이유와 보안사령부로 보고된 「사망사건보고서」를 기무사를 통해 공개를 요구하였으나 회신을 받지 못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옮김)

  • 민주동문(고인)최호현
    법학과 93
    • 자본주의 연구회를 만들고 운영하며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독일로 유학한 후 2023년 4월 독일에서 사고사하였음

  • 민주열사유인식
    철학과 82
    • 1963년 인천에서 출생
    • 198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입학
    • 1985년 노동현장에서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 1986년 샘터교회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 1987년 한국기독노동자 인천지역연맹 대표자회의 성워느 6월항쟁 적극 참여
    • 1987년 8월 1일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여름수련회에 체육부장으로 참여 /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영면

    유인식 동지는 1982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내 써클에 가입해서 고교시절부터 생각해왔던 민주화의 대열에 앞장섰으며, 학교내에 경찰이 진주하고 학내 집회조차 열기가 힘들었던 1, 2학년 시절을 보내면서 한반도의 상황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다. 이때부터 유인식 동지는 노동자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곤 했다. 결국 노동자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함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현장생활을 준비하였고, 1985년 구로공단 내 금속공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입사한지 몇 개월 후에 신분이 드러나서 공장을 나와야만 했다. 그 후 1986년 9월부터 인천대 앞에서 사회과학 전문서점 “밀물”을 운영하며 많은 후배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86년 7월말 샘터교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87년 5월 그동안 같이 고민했던 노동청년들을 모으고 좀 더 많은 대중들을 모으고자 샘터교회 청년회를 만드는데 노력했으며 실제적으로 홍보부를 맡아 운영해 나갔다. 87년 6. 10일 국민 평화대행진 때 누구보다도 앞장서 헌신적으로 싸웠으며 이어지는 6.18, 6.26 가두시위 때도 노동청년 회원들과 더불어 선두에 서서 군부독재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데 앞장서서 싸웠다. 87년 7월 양심수 전원 석방 촉구대회에 참여하였고, 그 후 답동성당 농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헌신적으로 임했다. 87년 7월말 수련회 실무위원회 조직부원으로 참가하였다가 동료가 물에 빠지자 사람과 사람의 손을 연결하여 최선두에 서서 동료를 구하려고 하였으나 운명하였다. 결국 동지는 자신의 안녕보다는 이 땅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모습들을 개혁하고자 몸부림쳤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보다 동지를 더욱 사랑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옮김)

  • 민주동문(고인)차석진
    농경제학과 85
    • 대학시절 농대 사회부장으로 각종 시위를 주도한 후 구속, 대학 중퇴 후 부산지역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해방택시를 창립하여 전국민주택시 조직운동을 전개하는 등 노동 현장에서 평생 활동하다 2023년 12월 24일 간암말기로 세상을 떠남

  • 민주열사유재관
    사학과 81
    • 1962년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에서 출생
    • 1981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입학
    • 1983년 11월 전두환 독재정권 규탄 학내시위 주동자로 수배
    • 1984년 수배해제 및 복학
    • 1985년 신흥목재(우아미 가구) 입사하면서 노동운동에 투신
    • 1987년 6월 항쟁에 적극 참여
    • 1987년 7월 신흥목재 어용노조 민주화투쟁 주도로 해고
    • 1987년 8월 노동자대투쟁에 적극 참여
    • 1988년 3월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분회원으로 활동
    • 1988년 4월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활동
    • 1989년 7월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활동
    • 1991년 6월 27일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총회준비위 회의 도중 경찰이 침탈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조직문건을 끝까지 챙겨 피신하다 영면하심.

    84년 학원자율화조치로 수배 해제되어 학회건설에 노력하던 동지는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역량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며, 젊은 지식인으로서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당시 동지는 구로지역을 거쳐 인천으로 가게 되고, 주로 목재단지 근처에 방을 얻어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목재 노동자회와 인노회, 인사련의 활동을 통해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통일 그리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는 활동을 앞장서서 전개하였다. 91년 6월 27일 1시경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에서 정기총회를 준비하던 동지는 새벽 1시 50분경 인천대 공권력 투입소식을 접하고, 인사련도 침탈당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럴 경우 총회자료가 압수당하게 되고 조직에 대한 큰 타격이 예상되어 이를 막으려 급히 사무실을 나오다가 3층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렸으나, 실족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옮김)

  • 민주동문(고인)서정만
    행정학과 84
    • 영화 ‘정돌이’의 주인공인 송귀철을 청량리에서 만나 안암동으로 데려와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만들었으며 88년 민정당사 점거 투쟁 등 학생운동을 하였고 졸업후에도 성실한 생활을 하는 중에 암으로 2023년 7월 18일 세상을 떠남

  • 민주열사임혜란
    가정교육학과 84
    • 1965년 4월 17일 서울에서 출생
    • 1984년 고려대학교 가정교육학과 입학 / 고대 기독학생회(SCA)에서 학생운동
    • 1988년 노동운동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인천 링크시스템에 입사
    • 1989년 대한트랜스(주) 입사, 민주노동조합건설 조직부장으로 활동 중 해고 /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6개월여간 옥고를 치르고 집행유예로 석방.
    • 1991년 인천노동선교문화원 창립에 기여하였고, 땅방울 산악회 간사로 활동.
    • 1992년 백혈병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입원
    • 1993년 9월 9일 영면

    서울출생으로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가정교육학과에 입학하여 고대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 땅의 사회적 모순에 대하여 인식하게 됨.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88년 대학교를 중퇴한 이후 인천 링크시스템에 입사하였다. 그리고 89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구로1공단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트랜스(주)에 입사하여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쟁의와 관련하여 부당해고와 업무방해를 하였다는 혐의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출소 이후 동지는 인천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 공간 제공 및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인천노동선교문화원 창립에 참여하였고, 문화원 땀방울산악회 간사로 활동하던 중 백혈병으로 92년 9월경부터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년여의 투병에도 불구하고 동지는 93년 9월 9일 꽃다운 나이에 신촌세브란병원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옮김)

  • 민주열사유구영
    행정학과 76
    • 1957년 11월 2일 충북 오창에서 출생
    • 1976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 1978년 11월 9일 엄주웅(경제76)과 함께 교내시위 주도 후 도피
    • 1979년 3월 9일 천영초(신방72), 서명숙(교육76), 박종원(이화여대), 조봉훈(전남대) 등과 유신반대 대학연합 시위조직 세력 규합 중 경찰에 검거.
    • 1979년 4월 18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망 이후 형집행정지로 석방.
    • 1981년 한국신학대학원 입학
    • 1982년 보성금속 입사로 노동운동 투신
    • 1985년 영등포산업선교회 교육간사
    • 1986년 조직사건으로 수배
    • 1990년 ~1995년 서울노동조합협의회 선봉대장, 정책실장
    • 1995년 12월 민주노총 정책기획실 정책부국장
    • 1996년 5월 2일 과로로 인한 간암으로 영면

    동지는 78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 대학에서 유신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81년 졸업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간암 중기의 하늘이 무너지는 선고가 내려지기 전날 밤에도 동지는 민주노총의 핵심적 과제 중의 하나이면서 동지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을 새벽 4시까지 정리했다. 민주노총의 정책기획국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꿈에도 염원하는 민주노총 건설이 실현되고, 자신의 땀이 밴 그 조직이 이제 막 새롭게 활동을 펼치려던 참이었던 96년 5월 2일 새벽 2시 25분경, 아직 채 못 피운 서른아홉 살의 짧은 생애로 운명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옮김)

  • 민주열사강희철
    수학교육학과 81
    • 1962년 12월 19일 인천 출생
    • 1981년 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 입학
    • 1989년 인천민주청년회 노동분과장
    • 1990년 인천민주노동청년회 조직국장
    • 1991년 노동자 문화마당 ‘일터’ 기획실장
    • 1993년 통일을 여는 민주노동자회 조직위원장, 노동자 통일대 ‘백두’ 활동
    • 1995년 한국노동운동협의회 조직강화특위 수도권 대표
    • 1996년 평화와 참여로 가는 시민문화센터 사무처장
    • 1998년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본부장
    • 1999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조직위원
    • 2000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조직위원장
    • 2003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정치위원장
    • 2003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회의 도중 뇌출혈로 입원
    • 2003년 4월 13일 영면

    동지는 1962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지역에서 청년 노동자들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위해 젊음을 다 바쳤다. 또한 2000년부터는 전국연합 조직위원장, 정치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평생을 조국의 통일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길에 바쳐왔다. 2003년 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도중 뇌출혈로 입원한 동지는 미국에게 빼앗긴 주권회복과 진보정치 승리를 위한 그 길에서 동지와 함께 해온 수많은 동지들의 눈물 섞인 방문과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41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옮김)

  • 민주열사민한홍
    국문학과 83
    • 1983년 고려대 국문학과 입학
    • 졸업 후 노동현장에 투신
    • 1991년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에서 활동
    • 2002년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화학노련)에서 조사부장으로 활동
    • 2005년 5월 경인지역화학일반노조 결성 후 부위원장으로 활동
    • 2005년 9월 화학노련의 비민주적인 조직 운영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던 중 화학노련에서 해고
    • 2005년 10월 22일 노조의 부당해고에 맞서 1인 시위 후 귀가하여 자택에서 영면

  • 민주열사이해삼
    수학교육학과 82
    • 1963년 6월 2일 서울 출생
    • 1982년 고려대학교 수학교육과 입학, 기독학생회 활동 시작
    • 1985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회장 / 학내시위와 관련 구속 후 1년 수감생활
    • 1987년 종로5가에서 제화노조를 준비하던 이갑동 등 5명과 역사적 만남 / 그 후 2-10명이내의 영세 제화공장을 엮어 제화노조를 결성
    • 성수동 제화노조에서 계속 활동
    • 1990년 전노협(전국노동자 협의회)결성에 참여
    • 1995년 민주노총 결성된 이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지도위원으로 활동
    •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
    • 2001년 고려대 노동대학원에서 노동복지정책 공부
    • 2004년 17대 총선, 광진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후보 출마
    • 2006년 민주노동당 최고의원,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장
    • 2009년 한국제화아카데미 원장을 맡아 수제화 기능공 교육훈련에 앞장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및 이사 /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
    • 2012년 ‘새로운 진보 운동을 위해’ 통합진보당 탈당
    • 2013년 서울 성수수제화 생산협동조합 이사 / 새날을 여는 사회교육센터 대표
    • 2013년 4월 21일 영면

  • 민주열사유병진
    영어영문학과 85
    • 1966년 충북 옥천 출생
    • 1985년 옥천고등학교 졸업
    • 1985년 고려대학교 문리대 영어영문학과 입학
    • 1987년 문예비평회 회장 역임
    • 1987년 12월 9일 대통령선거 공정선거 감시인단 활동중 학생회관 화재시 질식
    • 1988년 3월 25일 오랜 투병 끝에 운명

    유병진(영문85) 열사는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 공정선거 감시인단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12월 9일 새벽 2시, 임시학생회관으로 사용되던 가건물안에 있던 석유난로에서 불이 났는데 유병진 열사는 동아리방에서 잠을 자다 연기에 질식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깨어나지 못하였다. 제대로 된 학생회관이 없어서 샌드위치판넬로 지은 가건물을 사용했던 열악한 학교 현실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부르고 말았다. 화재 당시 유병진 열사는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던 후배에게 방값을 선뜻 내어주면서 자신은 학관에서 잠을 청하다가 화재사고를 당하였다. 화재사고 이후 치료를 위한 투병 과정중에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열사의 따뜻한 마음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한 뜨거운 투쟁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선후배들이 모여 <유병진 장학회>를 만들어 해마다 열사의 기일에 맞춰 세종캠퍼스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세종캠퍼스 인문관앞 추모비에 심어놓은 진달래꽃이 피는 3월이 되면 열사의 그 마음이 세종캠퍼스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가슴에서 피어난다.

  • 민주동문(고인)박은지
    국어교육학과 97
    • 1979년 서울 출생
    • 1997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입학
    • 서울지역 사범대학학생회협의회 의장
    • 전국학생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 서울 국사봉중학교 교사
    •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동작을 김종철 후보 수행비서
    • 진보신당 서울 동작당협 부위원장
    • 진보신당 언론국장, 부대변인 대변인
    • 2012년 19대 총선 진보신당 비례대표 7번 후보
    • 노동당 부대표, 대변인
    • 2014년 3월 8일 사망

    박은지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진보신당 대변인과 노동당 부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 2014년 3월 8일 사망했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나온 후 학원 강사를 하다가 서울 국사봉중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다. 1년 계약직이었지만 6개월만에 임신을 이유로 해고됐다. 다시 학원 강사 일로 돌아갔다. 2008년 진보신당 공채에 지원해 정치에 입문하였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학원 강사 시절 모아둔 돈을 사용하며 생활했다. 진보신당에서 언론국장, 부대변인, 대변인 등을 지내며 당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7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득표율 1.13%를 기록하면서 낙선했다. 노동당에서 박은지는 주로 홍보 분야에 주력했다. 박은지의 지인은 그의 노력에 대해 "대변인 시절 기자들에게 문자 폭탄을 돌렸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당 대변인 자격으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출연해 발언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인 2012년 8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당원들과 함께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했다, 진보신당이 노동당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당 부대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대변인직은 2014년 1월 사임했으며 같은해 3월 8일 우울증 등의 이유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 민주동문(고인)김승교
    법학과 86
    • 1968년 경남 진주 출생
    • 1986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입학
    • 1988년 법대 사회부장
    • 199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 2015년 8월 31일 간암으로 영면

    고 김승교님은 법대 사회부장을 하면서 학생운동을 하였고, 졸업 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주로 맡아 구명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무료 변론하고 구명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공동대표, 통합진보당의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8월 31일 운명하였다.

  • 민주동문(고인)노회찬
    정치외교학과 79
    • 1956년 부산 출생
    •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 2002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 2004년 제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 2005년 민주노동당 삼성불법정치자금 및 안기부불법도청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 2008년 진보신당 대표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정의당 원내대표
    • 2018년 7월 23일 사망

    노회찬은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생운동을 하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충격으로 노동운동에 뜻을 품게 된 그는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 서울, 부천,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가의 삶을 시작한다.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한 것과 관련해 1989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가입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는다. 1992년 출소 후 백기완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본부 조직위원장, 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 진보정치연합 대표,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거치며 진보 정당 운동에 매진했으며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의 결실을 보게 된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한 노회찬은 특유의 입담과 “불판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이름을 알리며 10선에 도전하는 김종필을 0.1퍼센트 차이로 제치고 국회에 입성한다. 이후 19대 총선과 20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되지만 세 번 모두 임기를 끝까지 채우지 못했다. 특히 2005년 17대 국회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갑을 받아 온 검사 7인을 공개한 이른바 ‘삼성 엑스파일 사건’에 대해 2013년 대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19대 의원직은 8개월 보름만에 상실했다. 3선 의원으로서 7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일관되게 노동자와 서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 있었다. 호주제 폐지,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제정됐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와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농민 생존권과 식량 주권 확보, 주택 및 상가 세입자 보호, 중소 자영업자를 위한 법안 등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아직도 그가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정리해고 제한법’등이 계류중이다. 검찰 사법개혁과 선거제도 개혁 등 못다 이룬 그의 꿈들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 노회찬재단 ‘노회찬, 함께 꾸는 꿈’에서 발췌 -

  • 민주동문(고인)최미정
    수학과 83
    • 1983. 고려대 입학
    • 1991. 死

    최미정 동지는 고대 수학과에 입학하여 학회활동을 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총학생회 사회부 활동 중 건국대 투쟁으로 구속되었다. 졸업 이후 평화연구소에서 활동하였으며, 마산에서 활동을 준비하던 중 교통사고로 임신 3개월인 채로 영면하였다.

  • 민주동문(고인)김영환
    불문학과 84
    • 1965. 生
    • 1991. 死

    김영환 동지는 불문과에 입학하여 불문과 학생회, 총학생회 사회부 활동을 하였다. 졸업 이후 한겨레 사회연구소에서 한미군사관계, 평화군축문제, 남북통일문제 등에 대해 의욕적 연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동맥수술로 인해 과로를 피했어야 했으나 과로로 인해 안타깝게 영면하였다.

  • 민주동문(고인)김종철
    법학과 75
    • 1955. 生
    • 1997. 死

    김종철 동지는 써클 ‘민맥’의 전신인 ‘사회과학연구회’ 창립 멤버로 활동하였다. 고려대 중퇴 후 78년 경상대 앞에서 민간 도서관 ‘책사랑’설립을 주도하였으며 부마항쟁배후조정으로 조작하려는 경찰의 고문을 받았다. 1997년 영면 이후 2010년 제 1회 부마민주상을 수상하였다.

  • 민주동문(고인)안희대
    정치외교학과 73
    • 1954.3.20. 生
    • 1998.10.9. 死

    안희대 동지는 73년 고대 정치외교학과에 수석 입학하였다. 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되었으며 이후 반독재 학생운동으로 구속수감되기도 하였다. 민주화 운동 청년연합 집행국장, 서울 민족민주운동협의화 사무처장,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 활동을 하였으며 1998년 10월 9일 영면하였다.

  • 민주동문(고인)김관회
    경제학과 74
    • 1953. 生
    • 1999.7.10. 死

    김관회 동지는 75년 유신반대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되었고, 이후 76년 구로공단에서 현장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 80년 10월 17일 계엄반대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 민주동문(고인)조석현
    법학과 79
    • 1959. 生
    • 2001.4. 死

    조석현 동지는 81년 고대 학술 서클 ‘사회과학 연구회’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반군사독재 교내시위 주도로 구속수감되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4년 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고, 87년 지명수배 중 서울 북부지역 노동자 교육활동을 하였다.

  • 민주동문(고인)윤석환
    사학과 77
    • 1957.3.30 生
    • 2008.1.13. 死

    윤석환 동지는 고대 사학과를 졸업한 이후 제주도로 귀농하여 친환경 농업을 위한 농산물생산공동체를 설립하였으며, 문맹어르신 한글학교 자원봉사 활동을 하였다.

  • 민주동문(고인)김신
    정치외교학과 83
    • 1965.1.4. 生
    • 2009.1.29. 死

    김신 동지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현대 철학회 서클활동을 시작하였다. 86년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의장을 역임하였다.

  • 민주동문(고인)김영진
    법학과 78
    • 1960.7.2. 生
    • 2012.6.16. 死

    김영진 동지는 민족이념연구회 회장을 하며 학생운동을 하였고, 졸업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연맹 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전쟁반대 긴급행동 사무처장, 한국 DMZ평화생명마을 추진위원회 서울사무소장, 세계 생명문화 포럼 추진위원 등 활동을 하였다.